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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흔적

두 사내의 로드무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vs '그랜 토리노'



웨스 앤더슨 감독의 최신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사진 위쪽). 예술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국내 개봉 3주만에 관객 동원 50만명을 돌파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소리없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영화는 매력포인트를 꼽자면 다섯 손가락, 아니 어쩌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수도 있을만큼 개성있는 작품이다. 판타지와 코미디, 스릴러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영화의 줄거리는 물론이고, 정교한 미장센, 넘치는 색채감, 화려한 출연진, 감독의 독특한 작품세계 등 시각적인 측면에서 경탄을 자아낸다.


깊은 산 속 웅장하고 비밀스러운 호텔을 무대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갖가지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조밀하게 플롯을 엮어낸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플롯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두 남자 주인공이다. 베테랑 호텔 지배인 무슈 구스타브(랄프 파인즈)와 초짜의 유색인 호텔 로비보이(토리 레볼로리).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콤비는 우정을 나누며 험난한 여정을 함께한다. 영화는 다른 의미에서는 두 사내를 내세운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상극에 가까운 두 명의 사내가 짝을 이루는 로드무비는 할리우드에서 심심치 않게 변주되어온 장르이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내일을 향해 쏴라'나 '레인맨'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처럼 연령, 인종, 문화 등이 지극히 이질적인 조합이 등장하는 영화로는 단연 '그랜 토리노(Gran Torino)'가 떠오른다.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나 주제 의식은 전자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기발한 판타지에 가까운 반면, '그랜 토리노'는 서정적인 성장영화이자 희생의 모티브가 짙게 드러나는 드라마이다. 


그럼에도 사내들의 특별한 우정, 역경(또는 모험)과 희생, 타민족이나 문화와의 만남 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두 편의 영화는 분명 공유하는 점들이 많다. 로드무비를 차용한 영화가 그러하듯이,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캐릭터들은 조금씩 성장 또는 변모를 거듭한다. 종국에는 한쪽 -그것도 연장자이면서 롤모델 역할을 한 이의 희생으로 귀결된다는 점은 두 영화가 공명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남은 자의 회고와 추억이 영화 구석구석 짙게 깔려있는 점 또한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두 사내의 조합은 어떨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유럽 백인 연장자와 동양계 난민 출신 청년이 호흡을 맞춘다. 둘은 업무적으로는 명백한 상하 관계에 있으나 위기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돈독한 파트너십을 과시한다. '그랜 토리노'에서는 완고한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의 미국 백인 노인과 몽족 출신의 난민 소년 출신이 콤비를 이룬다.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둘은 일상에서부터 점차 서로를 알아가며 일종의 부자 또는 사제 간의 사이로까지 발전한다. 



장르적 특성 때문인지 두 편의 영화 중에서 좀더 섬세한 필치로 두 사내의 구도를 묘사하는 쪽은 '그랜 토리노'이다(사진 위쪽). 이스트우드는 소용돌이치는 성장기에 연약하기만 한 소년이 맞닥뜨리는 생존과 정체성의 문제를 은근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고집불통일 것만 같던 노인이 이웃의 이민자 공동체를 발견하고 친밀해지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노인의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을 뿐 아니라 문화적 소통능력까지도 길러졌음을 느낄 수 있다. 이와 달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둘의 차이를 탐구하는 데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오히려 영화의 한 대목에서는 무신경함- 무지와 편견의 산물이라고까지 볼 수 이는 인식을 드러낸다. 바로 구스타브가 탈옥한 직후에 탈옥을 도운 제로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다. 제로가 전용품인 향수를 챙겨오지 않은 것에 분노한 구스타브는 '이민까지 와서 뭐 하는 거냐'고 타박한다. 그런데 제로는 실은 전쟁으로 가족과 터전을 모두 잃고 떠나온 난민이었다. 이에 구스타브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며 제로에게 미안해한다. "이민자가 아니라 난민이었구나"라고 말하면서 제로를 동정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코믹한 장면이지만, 이 대사는 분명 이민자와 난민 사이에 존재하는 오래된 이분법과 모순적 인식을 보여준다. 이민자를 향해서는 경제적 기회를 찾아서 온 노동자이므로,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비용을 높이는 애물단지로 바라보고, 반면에 난민을 향해서는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시선. 하지만 따져보면 두 집단은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는다. 이주의 동기와 배경, 이주 경로, 정착과정 등이 모두 뒤섞이기 마련이고, 이주자migrant 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기실 난민 출신이든 이민자이든 제로의 처지가 달라질 것은 거의 없다. '3급 이민 취업비자'로 일하고 있는 제로는 여행을 할 때마다 경찰의 검문을 받아야 한다. 이때마다 구스타브는 제로를 적극 변호하고, 마침내 희생마저도 감수한다. 하지만 제로가 난민이라는 새로운 사실 앞에 갑작스럽게 다른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서구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을 꺼내보인다. 두 사내의 로드무비로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지니는 한계가 있다면 이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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