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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흔적

영화 '집으로 가는 길'과 수감자 인권

2004년 10월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30대의 한국인 주부가 마약을 운반하다가 검거되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강렬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어린 딸과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오던 평범한 30대 주부 송정연(전도연 분)이 국제마약사범이 되는 기가막힌 스토리와 함께, 수감자의 인권과 한국 정부와 공무원의 책임 등과 같은 묵직한 주제의식을 차례로 드러낸다. 영화를 끌고 나가는 방은진 감독의 뚝심있는 연출력도 주목할 만하지만, 이미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절정에 달한 바 있는 배우 전도연의 연기력이 다시 한번 광채를 발휘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전도연만큼 설득력있게 '여성적 자아'를 표현해낼 수 있는 배우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본다. 


영화를 보면 750여일이 넘도록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은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무능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특히 외교부와 대사관의 무책임하고 뻔뻔한 태도에는 자연스럽게 울분이 치밀어오른다. 그런데 국민 보호의 의무와 책임을 지니는 한국 정부 못지않게 이 상황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닌 또 하나의 행위자가 있다. 바로 송정연이 수감된 대서양 마르티니크의 교도소와 교도관들이다. 

 

프랑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인권 선진국이다. 그런데 마약운반 혐의를 받고 있는 동양인 여성이 겪어야 했던 현실은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일차적으로는 한국어 통역 제공이나 한국 재판 기록 송부 등과 같이 기본적인 영사 서비스를 외면한 한국 정부에게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감옥은, 특히 송정연이 2년 가까이 수감된 프랑스의 옛 식민지인 마르티니크의 교도소는 인권유린이 버젓이 자행되는 곳이다. 모욕과 인종차별, 폭력과 성적 착취, 굶주림 등의 온상이었다. 인권의 사각지대이자 한 마디로 치외법권과 다름없어 보였다. 대학원에서 난민촌을 주제로 한 수업의 리딩으로 조르조 아감벤의 글들을 읽었는데, 그가 주창한 치외법권extraterritoriality 개념을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같은 억압적인 환경에서 영문도 모른 채로 대한민국과 정반대 편에 위치한 외딴 섬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된 송정연. 그녀가 간절하게 요구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한 통의 전화이다. 남편과 딸의 목소리를 한 번만이라도 듣게 해 달라는 것이다. 가족과 제대로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채 떠나와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렴치한 범죄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파리의 감옥에서 첫번째 통화를 하고, 그리고 한국 정부의 방치 속에 무려 1년이 넘어서 보호관찰로 가석방 조치가 되고 나서야 겨우 두번째 통화를 한다. 전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정연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편지이다. 한국의 가족에게 쉬지 않고 편지를 써서 안부를 주고받고, 100여통을 보낼 때까지 단 한 통의 답장도 없었던 주불 한국대사관에도 끊임없이 편지를 보낸다. 정연에게 연락correspondence이란 생존의 이유이자, 목적을 제공하는 단 하나의 행위인 셈이다. 


연락하는 일이 수감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몇 년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주인권 업무를 보조하면서였다. 외국인 수감자의 진정사건 조사를 통역하기 위해 교도소를 방문했었다. 천안교도소나 대전교도소 둘 중 하나였는데, 외국인 수감자동에 마련된 작은 접견실에서 수감자들을 차례로 면회했었다. 대부분이 출입국 사범이었지만, 나이나 언어, 국적 등이 모두 다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외국인 수감자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했던 것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화장실이고, 다른 하나는 전화였다. '고국의 가족들과 좀더 자주, 조금만 더 길게 통화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냐'는 것이 요지였다. 당시 교도소에서는 통화 횟수가 철저하게 제한되어있었던 것 같다. 전화가 무슨 대수이랴 생각했던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동행한 인권위 조사관께서 '우리가 전화로 안부를 알리고 싶은 것만큼, 그들도 같은 사람이니까 당연한 것 아니겠나. 가족과 생사를 확인하고 가족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권이다'고 말했다. 그때 내가 생각하는 인권의 범위가 아주 조금, 그러니까 1mm정도 넓어진 것 같다. 화장실로 대표되는 생리적 욕구 못지않게, 전화 통화는 외국인 수감자와 고향의 가족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던 것이다. 


그때 잠깐 만났던 수감자들의 얼굴이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 속 정연과 같이 모두가 극적으로 기구하고 억울한 사연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니 뒤늦게나마 내가 만났던 그들을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수감자에게도 가족이 있고 감옥 밖의 삶이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 이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인권이 진일보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전도연의 빛나는 연기에는 잠시 이성을 내려놓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도 될 것 같다. 영화는 감히 '밀양'을 넘어서지는 못하지만, 전도연의 필모그래피는 '밀양' 이후로 다시 한번 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