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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흔적

유럽의 이주자 위기와 야만

#SOS Europe. 지중해에서의 잇단 비극을 규탄하며 벌어진 지난 22일의 시위에 등장한 구호.


'유럽의 이주자 위기(Europe's migrant crisis)'. 

지난 한 주 주요 외신들의 홈페이지 한 구석을 장식한 문구이다. 최근 지중해에서 난민들을 태우고 유럽으로 향하던 선박의 전복 사고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유럽의 대응 능력과 이주자 대책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18일 리비아에서 출발한 어선이 이탈리아 인근 지중해에서 전복하면서 800여명이 숨졌다. 이 사고에서 구조된 난민은 900명이 넘는 탑승자 중 28명에 불과했다. 이어 20일에도 터키에서 출발한 난민선이 그리스 남동부 로도스 섬 근처에서 좌초돼 탑승자 300명중 최소 2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중해의 비극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해마다 수많은 이주자들이 뗏목, 작은 고기잡이배, 밀항 선박 등 각기 다른 이동수단에 의지하여 지중해를 건너려고 시도한다. 대다수가 아프리카의 분쟁 지역이나 빈곤 국가 출신인 이주자들은 위험천만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인신매매·밀수 조직에게도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오직 유럽에 도달하기 위해서다. 이와 같은 목숨을 건 이주 행렬의 와중에 어선 전복 등과 같은 사고로 숨지는 이들도 매년 수백에서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유독 지금 이 문제가 유럽에 충격을 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는 이전보다 훨씬 커진 피해 규모와 범위 때문일 것이다. 800여명이 바다 위에서 숨진 이번 사고를 포함해서 올해 들어 지중해에서 사망한 이주자의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17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유엔은 보고 있다.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 악화 등 외부적 요인이 이주자의 급증을 부추기고 있는 데다, 이제 막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주자의 인적 구성도 북아프리카인만이 아니라 시리아 등 중동, 방글라데시 등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사람의 목숨에 몸값을 매기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면, 사망자가 한 명이든 혹은 천 명이든 사건의 경중에도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최강대국 지도자의 암살이 아닌 이상에야 몇 명이 죽었느냐에 따라 뉴스가치가 달라진다. 불행히도 인간의 목숨은 너무나 쉽게 계량화되고, 심지어 인종, 빈부, 교육수준의 차이 등에 의해 서열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매년 소리없이 죽어가는 이주자들의 무덤이었던 지중해가 비로소 '800명 몰살'의 충격과 함께 '유럽의 이주자 위기'를 전면에 드러내는 무대가 되었다. 


때로는 하나의 작은 사건이 뿌리깊은 사회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이번 전복 사고로 불거진 유럽의 이주자 위기도 그렇다. 유럽의 야만 혹은 비문명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18일 리비아 어선 전복 사고에서 해상 구조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 안전 규정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갑판 아래 짐칸에는 300명 가량이 갇혀있었고, 이 때문에 피해가 더 커졌다. 매년 늘어나는 이주자 수요에 대해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의 힘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리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 차원의 체계적인 대책과 관련 예산은 오히려 감소했다. 특히 난민보트 이주가 초국가적 범죄조직의 치밀한 계산에 따라 이뤄지는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사실상 사태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유럽의 대응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이주의 원인, 세계화, 빈곤과 개발, 분쟁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환기한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정리될 수도 있는 하나의 사건이 많은 이슈를 품고, 내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이슈들을 짚어볼까 한다.  



이번 대규모 전복 사고 현장을 포착한 사진은 찾지 못했다. 사진은 과거 사고 모습을 담은 것으로 출처는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