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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놓고말하다

'낙후'라는 전략

지금의 일(작은 사회적 기업의 상근자)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자주 떠오르는 경구가 하나 있다.

 

"공략하기보다 낙후시켜라."

사회학자 조한혜정 교수(연세대 문화인류학과)가 즐겨 언급하는 말인데, 내가 처음 이 말을 접한 것은 아마도 2002년 사회학 전공 수업이 아니었던가 한다. 고등학생 때 그의 글을 신문 칼럼에서 접하면서(주로 하자센터와 청소년에 관한 글이어서 더욱 공감했던 것 같다) 사회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대입이 끝난 후에는 '글 읽기 삶 읽기' 등 '또 하나의 문화'에서 발간한 도서들을 쭉 훑으면서 꼭 직접 강의를 듣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의 수업은 내게 느낌표보다는 물음표와 말줄임표로 남았다.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거나 정통한 이론에 입각해 분석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지식을 창조적으로 적용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을 요구하는 그의 수업은 학부 초년생에게는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공략'이나 '낙후' 같은 단어들은 주문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이따금씩 강의나 저술을 통해서 그 말을 접했다. 하지만 사회과학도라는 알량한 자의식과 함께 나름대로 뜨겁고도 무겁게 사회문제를 고민한다고 자부했던 내게는 이 말이 마뜩지 않았다. '낙후시키라'는 구호가 기존의 잘못된 체제와의 싸움을 외면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깨뜨려야 하는 문제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일전을 피할 이유가 있을까.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과 억압 등 구조의 문제를 앞에 두고도 딴청하는 나이브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더 나아가 사회적 행동을 일단 쿨하고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강박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까지 들었다. 새롭고 세련된 '방식'을 찾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절실한 목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학자의 서신 교환인 위의 책(경계에서 말한다, 생각의 나무, 2004) 에도 이 말이 언급된 것으로 기억한다. 두 여성학자이 주고받은 서신은 한국의 계간지 '당대비평'과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에 차례로 연재되었다.


그런데 여러 과정을 거쳐서 실무를 하는 위치에 서게 된 후부터 "공략하기보다 낙후시키라" 말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다. 공감 내지 위로를 받았다고나 할까. 혹은 깊은 맛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현실에서는 구조를 한번에 뒤엎을수도, 전체를 바꿀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물며 실무자 한 사람의 힘으로 견고한 구조를 깨뜨릴 수 있으랴. 돈키호테같은 몽상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목표이다. 현실에서 가능한 것이 있다면, 주어진 환경에서 이전보다 약간 나아진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답습, 과오나 퇴행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사례, 변화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실무의 영역에서는 충분히 의미있는 진전이고 최선이다. 

 

그러므로 '낙후시키라'는 구호는 단지 치열한 싸움의 현장을 피해서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정면승부보다 더 효과적이고 전략적으로 싸울 것을 주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꼬이고 꼬인 문제들을 상대로 새로운 길을 제시함으로써, 지속되는 문제들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하고 그 모순을 내적으로부터 무력화하는 전략인 셈이다. 특히 사회적 기업의 경우에는 '공략'보다 '낙후'가 현실적으로도 강력한 전술일 것 같다. 사회적 기업에 대해 가장 널리 통용되는 정의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활동"이다.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굴레를 탈피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은 자체 수익모델이 없이 비영리형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우리 단체 또한 전통적인 시민단체와는 확실히 다른 태도를 취해야 한다.

  

하나의 프로젝트 혹은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공적인 영역에서 조직을 키워나가는 나의 일도 본질적으로 '낙후'의 전략과 맞닿아있는 것 같다. 그런데 현재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모색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는지는 의문이다. 신생 단체로써 신규 프로젝트를 런칭하였지만, 아직까지는 가능한 한 기존의 단체나 프로젝트와 비슷하도록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단순한 행정 문서 양식부터 체계까지 바닥부터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또 비영리 일이라고 어설프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나름의 판단과 주위의 조언 때문이지만, 과연 '낙후'의 전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해석으로는 '낙후'는 겉으로 드러난 스타일이나 방식보다는 오히려 싸움에 임하는 '자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면의 전략으로써 행해질 때만이, 운동이든 작은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든 견고한 현실의 벽 앞에서 지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공략하기보다 낙후시켜라'는 말의 주인공이신 조한혜정 교수를 우연히 만나서 십여년만에 정식으 인사를 드렸다. 대규모 지하공간 조성 사업인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로 들썩이고 있는, 모교이기도 한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안에서였다. 선생님은 대학 구성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900억원이 넘게 소요되는 사업을 밀어붙인 학교 당국을 상대로, 유서깊은 캠퍼스의 풍경을, 나무들을 지켜내기 위한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운동을 소개하고 있는 조한혜정 교수의 한겨레 칼럼 원문은 여기


지난 8월의 이른 아침, 학교 당국은 연세대 정문부터 본관까지 길게 뻗어있는 백양로에 포크레인 몇 대를 운집시켰다. 백양로를 수놓은 수백여그루의 나무들은 하루 아침에 베어졌고, 나무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흙바닥이 흉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백양로를 따라서는 공사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커다란 가림막이 세워졌다. 80년대 학생 민주 운동의 중심지인 중앙도서관 앞 광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무와 풀이 모조리 뽑혀버린 모습은 폐허를 방불케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사업에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모여서 '백양로 다방'을 세웠다. 학교 측의 공사 중단 및 프로젝트 재검토를 요구하기 위한 운동의 거점, 즉 농성장이다. 현수막에 쓰여진 구호가 이들의 주장을 압축한다. "지금은 나무를 밀어버릴 때가 아니라 사람을 밀어줄 때입니다. 재창조는 포크레인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 우선주의에 입각한 이들의 주장도 주목할 만하지만, 백양로 다방은 시각적으로도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있다. 작은 테이블과 의자들을 펼쳐놓고, 한켠에는 베어나간 나무들을 모아서 쌓아두었다. 밤이면 테이블 위에 촛불을 밝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차를 대접한다. 그 풍경이 쓸쓸하면서도 퍽 아름다운지라, 색다른 오브제나 첨단의 설치미술처럼 보인다. 옆에 있는 포크레인과 가림막 등 공사 현장의 모습을 한 순간에 촌스럽게 만드는 효과마저 있다. 그리고 국토를 참담하게 만든 4대강 식의 섣부른 토건사업이 적어도 대학에서만큼은 되풀이되는 일을 막아야겠다는 울림을 남긴다.


추석 당일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서 열린 백양로 달빛문화제의 한 장면. 성미산마을 합창단에서 지지방문을 해서 'Let it be'를 불렀다. 한글로 개사한 비틀즈의 노래의 후렴구는 '냅둬유'이다.



또다른 설국열차에 올라탄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했지만, 일터에서 나는 많이 외롭고 지쳐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런 여건에서 일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때마다 '낙후'라는 말을 떠올려보려고 한다. 직선으로 내달리거나 직설로 내지르고 싶을 때에는 그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앞으로 '낙후'라는 말을 연상할 때, 야심한 초가을 밤에 폐허가 된 캠퍼스를 지키던 노선생님의 모습이 함께 그려질 것 같다. 주변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줍고 테이블 보를 정돈하는 등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던 그는 "(운동이) 그래도 잘 될 것 같은데? 잘 될 것 같아"라고 하셨다. 과연 모교에서 벌어지는 운동도, 내가 하는 사업도,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낙후'시킬 수 있게 될까. 다행히도,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면서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눈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현자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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