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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놓고말하다

청년 일자리 문제, 통계와 현실

최근 청년 일자리에 대한 통계자료가 잇따라 발표되었다. 통계청의 '2015. 2.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의 실업률은 11.5%에 달한다. IMF 경제위기 직후 이후에 실시했던 조사를 제외하고는 최고치라고 한다. 높은 실업률을 뒷받침하듯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청년들도 줄어들고 있다. 아래 그래프와 같이, 20대 청년층의 고용률은 57.2%에 그치고 청년 취업자 숫자가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다. 어렵게 취업을 했다 해도 상황은 좋지 않다. 신규 청년 취업자 5명중 1명은 계약직으로 출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당시 첫 일자리가 1년 이하 계약직인 취업자는 11%였으나, 2011년부터 20%대로 진입했다. (2015. 1.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청년층 부가조사)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그래픽 출처는 오마이뉴스)


통계가 말해주는 청년 일자리의 실태는 짐작보다 훨씬 심각하다. 대학 5학년생, 이태백, 인구론, 오포세대 등 청년의 현실을 반영하는 신조어들에 담긴 추상성이 실증적인 증거로 나타난 셈이다. 여기에 OECD 국가들과 비교해서 과도하게 긴 노동시간이나 낮은 최저 임금수준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숫자만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그려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숫자를 근거로 전체 그림을 파악할 수는 있다. 작게는 개인과 집단, 크게는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할 것인지 예측하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통계자료 분석에 기반한 양적 연구방법론이 질적 방법론보다 나날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도 -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통계방법론은 이미 대세이다 -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위의 통계 자료들을 통해 다시금 내가 처한 현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현재 업무상 대학생을 주축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하기 때문에 청년 문제의 현장에도 비교적 가까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직간접적으로 청년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보고 듣는 기회도 많다. 그런데 청년 일자리에 대한 통계를 접하면서 그동안 심증만 갖고 있던 현상이나 흐름을 사실로 확인하게 되었다. 허나 지식의 발견에 대한 기쁨보다는 슬픔, 내지는 씁쓸함이 앞선다. 그만큼 청년 일자리 문제절망적인 탓이다. 


지난 2년 동안 인턴이나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수 차례 구인 공고를 낸 바 있다. 그 때마다 청년 취업난과 나쁜 일자리 문제를 실감한다. 채용의 첫 관문인 서류 심사를 위해 이력서를 검토할 때부터 그렇다. 객관적으로 전혀 흠 잡을 데 없는 조건을 갖추고도 취업에 실패하고 있는 청년들의 사례를 접하는 것이다. 인턴의 경우, 지원자 대다수는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들이다.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거나, 일반적인 대졸자가 첫 직장으로 선호하는 섹터가 아닌데도 인턴 모집에는 다수의 지원자가 몰린다. 물론 비영리/사회적기업이라는 직종의 특성상 이 일에 투신하기를 원하는 열정적인 청년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대학 졸업을 불과 한두달 앞둔 채로 불안정한 인턴직에 지원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열정'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직원 채용 시에는 더하다. 사회생활 경력이 꽤 되는데도 불구하고 정규직 근무경험이 아예 없는 청년들의 사례를 종종 접한다. 경력직원 모집에는 이력서에 주어진 경력난을 훌쩍 넘어갈 만큼 많은 경력을 보유한 지원자들도 제법 있다. 그중에는 제법 공신력있는 기관들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 기관을 떠났다면, 짐작하듯이 대개 한 가지 이유에서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다가 계약 만료와 함께 그만둔 것이다. 경력 변경을 꾀하는 과정에서, 혹은 사회적으로 보다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도전하는 청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계약직을 전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계약직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수록 이후에도 연거푸 비슷한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일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청년들의 높은 실업률(혹은 낮은 고용률)과 높은 계약직 비율을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도 체감한다. 그래서 인턴이나 직원을 채용할 때마다 고민에 빠지곤 한다. 실은 우리 단체가 채용하는 청년 일자리의 여건도 그리 좋지만은 않아서다. 당장 현업에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신입보다는 경력직을 우대하고, 프로젝트에 따라 채용을 하다보니 모두 계약직이다. 당연히 업무의 수준이나 강도에 비해 보상도 높지 않다. 단체 구성원에게 가능한 한 최대한의 보상과 안정성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다. 사실 나부터도 5년이라는 프로젝트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인건비가 확보된 계약직일 뿐이다. (무모하게도 나는 자발적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떠나서 계약직으로 옮겼다.) 

IMF 위기 당시의 수준에 버금가는 실업률, 그리고 사상 최고치에 다다른 비정규직 비율. 비단 청년들에게만 해당되는 현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통계에서나 현실에서나 청년 일자리가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절망에 빠져있는 것은 자명한 현실이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이야기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이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명 '장그래법'에 따라 계약직의 계약 기간을 늘린다고 해서 청년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허상이다. 그저 이력의 대부분을 계약직으로 채울 청년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뿐이다. 

얼마 전 직원 선발을 위한 면접에서 한 30대 청년 지원자는 이같이 대답했다. 이력서를 빼곡히 채울 만큼 경력이 다양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계약직이었거든요"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또다시 그런 대답을 듣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가 또다른 '장그래'를 양산하는 법안에 광고모델로 출연한 아이러니... 개혁과 개악은 한 글자 차이다. 사진 클릭시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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