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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놓고말하다

예기치 못한 공감

내용과는 별 상관없지만, 제목이 맘에 들어 차용했다. 개인적으로 탁월한 책 제목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적절한 수준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와 더불어, 말이나 글, 즉 언어로써 현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포스팅에서 일터에서 느끼는 고민들을 종종 객관화하여 들여다보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하지만 막상 언어화하려니 조금 막막했다. 특수한 맥락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들다는 생각에 계속 주저했던 탓일까.  


그러던 중 최근 어떤 만남을 통해 계기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낯선 이와의 짧은 업무 관련 미팅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내게는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하나의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영어 표현으로 흔히 'total stranger'라고 하는생판 남이나 마찬가지인 이에게서 '예기치 못한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공감을 선사한 그는 교육 관련 여러 조직들을 거치며, 비영리와 모금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미국인 여성이었다. 개인 사정으로 현재는 잠시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 체류하는 중이다. 미국에 있는 지인은 내게 이 여성 A를 소개하면서, 내가 운영하는 단체에 도움이 되는 네트워크를 연결해줄 가능성도 있지 않겠냐며 한번 만나보라고 제안했다. 


이런 종류의 미팅에서 단번에 무언가가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대개는 단체와 주요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읊다시피 하고, 예상되는 비슷비슷한 질문들에 답변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만남의 상대가 외국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외국과 직접 교류하거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당장 협업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적다. 워낙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해외의 우수사례나 성공담을 참조하거나 적용하는 데도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누군가가 우리 단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나를 만나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줄 의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A는 미국에서 적어도 십수년 동안 교육 비영리 단체의 리더로 활동해 온 사람이다. 적어도 비영리 조직 운영에 관해 폭넓게 조언을 얻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A는 무척 적극적이었다. 우리 단체와 운영 방식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물어보더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감없이 의견을 피력했다. 분명한 미션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비영리 단체의 재정 운용 시 고려해야 하는 원칙들은 무엇인지, 모금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등 나로써도 피부에 와닿는 내용이 많았다. 나처럼 공공정책학 석사를 받은 A는 비영리 활동을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것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A는 단체에서 나와 비슷한 위치(이사/사무국장/중간관리자)에 놓여있었던 경험 때문인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업무적으로도 A는 구체적인 조언을 했다. 일례로 그는 내 '직위'라면 적어도 업무시간의 3분의 2 가량을 기금 마련(펀드레이징)을 위한 미팅에 할애해야 한다고 했다. 비영리와 모금 분야가 발달한 미국과 한국의 상황에는 큰 간극이 존재하지만, 새겨들을 만한 조언이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체류하느라 원치않게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버린 그로서는 자신의 커리어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일 자체가 반가웠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와 대화하면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정말 통한다고 느낀 순간은 그가 툭 던진 말 한 마디에서 찾아왔다. 


"I feel for you." 

직역하면 대략 "당신과 공감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기쁜 일보다는 슬프거나 괴로운 일을 당한 이에게 건네는 말이다. 당신의 상황을 마음으로 잘 알고, 위로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는 지난 2년 가량 단체에서 내가 맡아온 역할인 'ED(Executive Director)'가 어떤 일인지,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A는 자신이 겪었던 단체들과 달리 신생에 가까운 작은 단체이니 오죽하겠냐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또 단체의 기반이 제법 안정적으로 갖춰져있다고 하더라도 비영리 분야는 밑바닥부터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일이 너무 많다. 게다가 그는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을 일하면서 남편과 아이들 셋을 돌봐야 했다. 


얼핏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A의 말은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류의 담론과는 전혀 달랐. 선배랍시고 또는 어른이랍시고 던지는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말 속에는 공감능력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내가 했으니 자네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는, 개개인의 특수성이나 세태의 변화를 철저하게 도외시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뿐이다. 이런 논리가 극히 단순하고 천박한, 왜곡된 형태의 성공신화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정부에서 경험했다. 


하지만 A는 '공감'을 제일 앞에 내세웠다. 사실 그와의 만남에서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그에게 업무적인 고민을 세세하게 털어놓거나, 힘들어하는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가 먼저 무한 공감을 보여준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 외국인으로 한국에 살면서 느끼는 불가해함에 대해서 털어놓을 때 내가 대체로 공감을 표시해서였을까. 그는 내가 기자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밝힌 후에 '미안하지만 한국의 언론(영문 언론으로 한정했지만)의 수준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아니면 내내 밝은 얼굴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내 표정에서 그만 말 못할 고민이 묻어난 것일까.  

  

놀랍게도 나는 낯선 이가 스쳐가듯 보여준 공감에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 A는 단체 일도 중요하지만 네 삶과 가족,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니 시간 배분을 현명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감을 앞세운 말이어서인지 상투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답답할 때 술 한 잔 하고 싶거든 연락하라고 했다. 


'낯선 이들 중에 천사가 있다'는 오래된 경구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내가 그에게 공감을 되돌려줄 차례였다. A는 전에 일했던 단체를 떠난 이유를 밝혔다. 일은 너무 좋았지만, 조직이 문제였다고. 특히 조직의 수장이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어느 조직이나 늘 사람이 관건이다. 하지만 '사람'이 중요한 비영리 조직에서 개인의 역량(또는 함량 미달)과 특이성, 사람과의 갈등 등의 요소가 궁극엔 일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내 경험담을 털어놓거나 섣부른 위로의 말을 건네는 대신, 이번에는 내가 A에게 말없이 무한 공감을 표시했다. 


성서에는 '손님(strangers) 중에 천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친절하라'는 구절이 있다. 파리의 '셰익스피어' 서점 안에도 이 문구가 적혀있다고 한다. 출처는 picturequot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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