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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는 돈보다 소중한가 -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벨기에 출신 영화감독 다르덴 형제의 신작 '내일을 위한 시간'(위 사진). 몇 달 전, 다소 지친 표정의 마리옹 꼬띠아르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포스터 이미지를 보았을 때부터 관람을 벼르던 영화다. 포스터나 제목 만으로는 어떤 영화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영화는 굵직한 질문 몇 개를 던진다. 그 중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명료하면서도 중심이 되는 질문은, 이 글의 제목으로 달기도 한 '동료는 돈보다 소중한가'이다. 좀더 풀어서 써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될 것이다. 

회사는 (또는 공동체는) '아픈' 해고노동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큰 액수의 돈이 걸려있다면, 그럼에도 해고된 동료와 함께 할 수 있는가. 대부분이 돈을 택한다면, 그것은 문제인가. 만약 내가 당사자인 그 해고노동자라면, 과연 그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낼 것인가. 


영화의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공장에서 일하는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는 우울증으로 병가를 냈지만, 복직을 앞두고 해고된다. 회사 측이 노동자들에게 보너스와 산드라의 복직, 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해 투표를 하도록 한 것이다. 보너스는 많게는 천유로에 달하는 큰 돈이었고, 대부분이 산드라가 아닌 보너스를 선택한다. 작업반장의 외압이 있었음을 알게 된 산드라는 금요일 저녁에 사장을 찾아가 돌아오는 월요일에 재투표를 실시하게 해주겠다는 다짐을 받는다. 이제 그에게 남은 1박 2일 동안 동료들을 설득해야 한다. 아직도 안정제를 복용하지 않고는 타인과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남편의 말마따나 빚을 갚기 위해서, 또 임대아파트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는 반드시 복직해야 한다. 


이처럼 영화의 서사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서사에는 극적 재미를 주는 요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여주인공이 찾아다니는 16명의 동료들의 면면이 사뭇 긴장감과 흥미를 자아낸다. 인물이 달라질 때마다 이야기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16명의 인물들은 모두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공간과 상황에 놓여있다. 이는 일종의 연극적 장치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들은 그저 주인공을 뒷받침하는 행인1,2가 아니다. 한 명 한 명에 표가 달려있다. 이들의 반응이 산드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산드라가 이들을 찾아가는 시점은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즉 주말이다. 직장 동료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프랑스인의 주말을 보내는 듯하다. 산드라가 집에 찾아갔을 때, 대부분은 집 안 또는 집 근처에 있다. 가족 중심의 생활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잠시도 손발을 놀리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마당 청소, 집 수리, 세차, 세탁, 축구레슨까지. 반드시 돈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분주하다. 프랑스의 블루칼라, 특히 언제든지 해고의 위협이 있는 노동자에게는 주말 역시 노동의 연장선 상에 있는지도 모른다

월요일 아침, 투표 시작 전에 공장에 들어선다.

16명은 '동료인가 돈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직접 대답해야 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해 무엇이 윤리적으로 옳은 대답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돈은 개인의 이익이나 물질적 가치를 나타내는 반면, 동료는 사람 그 자체는 물론이고 개인의 양심이나 공동체의 연대 등과 같은 좀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그러나 결국 투표에서 산드라의 동료들은 '보너스'와 '동료'라는 대립하는 두 가치 사이에서 정확히 반으로 갈리고 만다. 다르덴 형제 특유의 윤리적 탐구가 잘 드러나는 동시에, 일시적으로 미궁에 빠지게도 하는 대목이다. 이제까지 1박 2일 내에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 그러면서도 일관된 목적의식이 없고 반복적으로 우울과 회의에 빠지는 - 여주인공을 내세워서 가치들을 대립으로 치닫게 하지 않았던가. 영화는 16명의 선택에 대해 누구도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때문에 영화의 질문 역시 철저히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다만 산드라가 해고노동자를 대표한다고 했을 때, 다르덴 형제의 가치지향성을 알 수 있는 점들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우선 절망에 빠진 해고노동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동료의 연대이다. 내내 결정을 망설이던 안나가 남편과의 결별을 각오하고서 산드라의 편에 서자, 산드라는 기운을 차린다. 마찬가지로, 해고노동자를 웃게 만든 것도 동료의 진심어린 말 한 마디이다. 축구장에서 만난 젊은 남자 동료는 울먹이면서 산드라 대신 보너스를 택한 것이 너무 찔렸다고 고백하다. 반면에 해고노동자를 울리는 것은 동료의 배신 또는 비난이다. 산드라는 믿었던 친구 나딘으로부터 외면당했을 때, 또 사실과 달리 문제의 원인이 당신이라는 비난에 직면했을 때,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투표 결과, 산드라의 복직은 성사되지 못한다. 사장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지만, 산드라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동료의 계약해지와 자신의 일자리를 맞바꿀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당신이 없는 동안 16명으로도 공장이 돌아갔다'며 사람을 숫자로 등치시키는 사장의 말에는 의연하게 대처한다. 1박 2일 동안 산드라는 그만큼 성장했다. 산드라는 회사를 걸어나오면서 전화로 남편에게 "우리 잘 싸웠다. 기쁘다"며 웃음짓는다. 영화는 결국 무심한 산드라가 생기와 웃음을 회복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화면은 처음부터 줄곧 밝고 생기있다. 태양열 에너지를 활용하는 공장을 소재로 해서인지는 몰라도, 영화 내내 눈부시게 찬란한 햇살이 비친다. 그렇다면 햇빛도 산드라가 처한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일종의 장치일지 모른다. 명감독의 연출에 더해, 명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도 런닝타임 100분이 넘는 영화를 힘있게 끌고 나간다. 특히 산드라 역의 마리옹 꼬뛰아르는 초라한 일상연기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진짜 배우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아무나 영화 내내 거의 똑같은 옷차림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서 강한 흡입력을 가질 수는 없다. 


영화의 원제인 'Deux Jours, Une Nuit'는 글자 그대로 '1박2일'을 뜻한다. '내일을 위한 시간'이라는 국내 개봉 제목은 상당 수준의 의역을 가한 셈이다. '내일'은 물론, '내 일'이라는 단어에 대입해보면 영화와 제법 잘 들어맞는 해석이지 싶다. 


해고에 맞선 투쟁, 우울증 치료, 가사와 자녀 양육까지 '아픈' 엄마 해고노동자의 삶은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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