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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놓고말하다

교육의 형평성이라는 개념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일은 아니지만, 비영리 교육 사업을 진행하는 일 역시 넓게 보면 '교육' 활동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기자를 그만두고 실무의 영역에 뛰어든 후부터 지금까지 여러 개의 교육 관련 프로젝트들을 담당하고 있는 나도 교육 분야에 몸담고 있는 셈이다. 햇수로 벌써 4년째이다. 하지만 아직은 교육에 대한 나 스스로의 고민이 깊어졌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다. 생각할 틈 없이 그날그날 부딪히는 일들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서일까.

 

그래서 교육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장에 가는 일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활동을 눈으로 보면 그 의미에 대해서도 조금 더 진지하게 탐색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면서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새로운 시각을 접하기도 한다. 그동안 주로 찾는 교육 현장이라면 국내의 지역아동센터나 사회복지관, 또는 일선 학교나 대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여름의 미국 출장은 해외의 교육·비영리 현장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미국 출장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었다. 전반부는 대학생 봉사자와 그들이 가르친 중학생들로 구성된 해외탐방단의 인솔자로, 후반부는 해외의 유사사업 비교 연구를 위해 비영리 단체와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는 연구자로써였다. 연구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저소득층이나 이민자 자녀를 위한 교육 지원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Educational Equity, 다시 말해 교육형평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입장에서 형평성을 강조하는 것이 무슨 새삼스러운 일이냐고 할 지 모르겠다. 동의한다. 전적으로 나의 무지에서 출발하는 의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른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가리켜 '불평등'하다고도 말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교육의 평등-equality-을 지향한다고 부를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굳이 형평성-equity-라는 단어를 쓰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교육에서의 equality와 equity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그러자 위와 같은 그림이 나왔다. 배경이나 능력(그림의 경우, 키/신장이다)이 서로 다른 개인들에게 똑같이 한 박스 씩을 나눠주는 것은 '평등'이다. 하지만 개인들 사이의 편차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형평'이란 일률적인 지원이 아니라, 가장 열악한 이에게 가장 많은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편차 없이 똑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 다만 오른쪽 그림과 같이, 가장 능력이 뛰어난 이의 경우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그림을 소개한 블로그는 학교의 사례를 들어 두 단어의 차이를 설명했다. 학생 1인당 펀딩이 모든 학교마다 같아야 한다는 주장이 '평등'이라면, 열악한 환경에 처한 학생들이 학습을 따라잡기 위해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형평'의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형평성의 관점에서는 대체로 학업능력이 낮을 가능성이 높은 저소득층이나 유색인 학생들에게 더 많은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아시아계 미국인 등 소수 인종의 권익옹호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도 이같은 관점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법적 보호와 교육을 위한 재단(AALDEF)은 기관의 활동 여역 중 하나인 '교육 형평성'에 관한 소개글에서 "교육이야말로 이민자들이 나은 삶을 성취할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영어 습득과 학교 적응은 물론이고,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환경에서 학생들이 양질의 공교육을 누릴 수 있도록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평등'과 '형평'이 다른 의미와 맥락을 지닌다는 것은 분명한데, 현장에서도 엄격하게 구분되어 쓰이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국내에서 교육 불평등, 교육 불균형, 교육 격차 등의 단어들이 동의어처럼 쓰이듯이, 미국에서도 아마 맥락에 따라 혼재되어 사용되지 않을까. 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다. 교육을 다루는 일을 한다고 말하기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구나.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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