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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가도사람생각

실내악의 관능 '실내악' 하면 흔히 떠오르는 풍경 몇 가지가 있다. 근대 유럽의 고풍스러운 저택에서 한껏 차려입은 귀족들이 우아하게 만찬을 즐긴다. 한쪽 구석에서 정장 차림의 음악가들이 실내악을 연주한다. 경쾌하면서도 경박하지는 않은 연주음악이 흘러나오는 연회장에서 귀족들은 사교에 열중한다. 당대의 한국으로 넘어오면, 결혼식 반주로 각광받는 실내악을 만난다. 예식 순서에 따라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된 '피아노트리오'가 반주를 맡는 일이 서양식 예식에서는 하나의 불문율이 되었다. 수세기 동안 실내악 혹은 체임버 뮤직은 하나의 독립된 음악장르로써 굳건한 입지를 다져왔다. 유명 작곡가들에 의해 탄생한 빼어난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널리 연주되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실내악은 '기능적' 측.. 더보기
영화 '화장'을 보고 (스포일러 일부 포함) 임권택 감독의 신작 '화장'을 봤다. 감독이 102번째로 만든 이 영화는 김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둔 중년의 남자 주인공이 다른 여자에게 연정을 품는다는 이야기이다. 화장품 기업 임원인 오상무(안성기 분)는 밤마다 아내가 입원한 병실을 지키며 아내를 보살핀다. 그런데 사실 그의 마음은 딴 데 가 있다. 젊고 아름다운, 부하 여직원에게 홀딱 빠진 것이다. 오상무의 욕망은 처음에는 슬그머니 그 여직원을 훔쳐보는 것 정도로 나타난다. 그러다가 결국엔 아내와의 결정적 순간에서도 그녀를 상상하기에 이른다. 남편의 욕망이 충돌하는 대상은 아내의 목숨이다. 비록 그의 욕망이 실제 사건이나 행위로 발전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없는 아내 옆에서 남.. 더보기
교향악 듣는 일상 그제와 어제, 그러니까 평일 저녁에 이틀 연속으로 교향악을 들으러 갔다. 매년 이맘때면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교향악 축제'와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연주회인 '아르스 노바 시리즈'를 차례로 감상했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편이지만, 일부러 음악당까지 찾아가서 듣는 일은 거의 없다. 더욱이 주중에는 저녁 약속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가해 축 늘어져있거나 아니면 퇴근 시간이 지나서도 사무실에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모처럼 동선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칼퇴근 후 공연장으로 향한 것이다. 교향악 축제는 순전히 레퍼토리 때문에 선택했다. 생상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더불어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이 연주 목록에 올라 있었다. 사실 연주를 맡은 국내 교향악단.. 더보기